달빛 그림자 / 정유찬
어둠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별이 점령한 검은 하늘에
달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가 된 달빛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맑은 눈동자를 빛나게 밝은 미소를 환하게 그렸습니다. 그러한
하늘이 담긴 작은 연못 언저리에서 고양이가 행운의 동전을 던지고,
그 동전이 물결을 일으키니 아메바같은 달이 별을 삼킵니다.
달이 꾸역꾸역 별을 삼키는 동안 고양이는 뜰 안에 풀잎 사이를
지나서 껑충 담장 위로 뛰어 올라 담장을 따라 걷다가 결국은 담을
넘어 골목을 달립니다. 고양이 발자국은 스치듯 골목에 흔적을
남기며 모퉁이를 돌았습니다. 징검다리처럼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 사이 먼
허공에는 시간의 수레바퀴가 보입니다.
갑자기 불어온 기이한 바람에
굳어지듯 천천히 그 거대한 수레바퀴가 멈추면 공간을 창조하는 황금대문도
순식간에 닫혀버립니다.
가로등도, 골목도, 고양이도, 담장도, 풀잎도, 연못도, 밝은 미소와
맑은 눈동자의 그대 모습도, 그 모습을 그리던 나도, 공간이전의 공간으로
형태와 윤곽을 잃고 사라집니다.
달빛그림자도 잠시 두리번거리다 스스로
연기처럼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마지막 남은 한줌의 빛이
소멸되면서 빛이 없는 어둠만 남고, 어둠만 있는 세상의 어둠은
의미가 없으니 어둠 또한 사라집니다.
텅텅 비었습니다..
'♡♥♡저며오는가슴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가을날의 기도 (0) | 2008.12.07 |
---|---|
세월... (0) | 2008.12.07 |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0) | 2008.12.07 |
바람같이 살자 (0) | 2008.12.07 |
아픈 가슴을... (0) | 2008.12.07 |